2023년 01월 01일(일) 23:55
*** 당선 시 ( 등단 작품 ) : 등등
http://www.jndn.com/article.php?aid=1672584933351942153
* 반려숲을 분양합니다
김미경
방금 들었죠? 차를 마시다 나무 탁자를 가만히 노크 했더니
메아리가 대답해요 말하자면 숲은, 식물성 이마를 가진 집요한 운동체
언제 이곳까지 번식을 넓혔을까요 집안에는 나무가 많아요 반려의 반열에서 새롭게 등장한, 신상이라 해두죠
숲은 제 스스로 문이 되는 종족
바람과 별들의 입구가 되었기에 대문 같은 것엔 관심 없죠
그래서 나무는 수백 년을 살아도 문고리를 몰라요
오래전 인간들의 무수한 안방을 차지한 저 네모에는 단단한 연결이 있어요
못이 숲을 뚫었지요 우리가 솔방울처럼 누워 친구와 ㅋㅋㅋ ㅎㅎㅎ 카톡을 할 때도
침대는 밥 달라고 짖어대거나 하악질하며 할퀴는 법도 없어요 그저 말없이 네 발을 순하게 모으고 옆에 앉아 식물성으로 웃고 있어요
탁자는 우리 집에 온 뒤 산책을 끊었지만,
맹인견보다 순해서 밖으로 나가자고 날뛰는 법이 없어요
친환경 나무마루에서
옹이를 처음 만진 날 맹인이었던 나에게 새 눈이 생겼어요
이것은 어쩌면 숲이 고안해 낸 방문 서비스
마루를 청소하다 옹이에서 솔솔 새 나오는 바람소리를 들었지요
그날 이후 바람의 음계는 솔이라는 걸 알아요
팔 다리 목 다 잘린 나무가 이렇게 착할 수 있다니,
당신도 한 마리 분양받으면 첫날부터 놀라게 될 거예요
이따금 물을 달라고 어항 밖으로 튀는 까칠한 물고기에 놀라셨다면
온종일 빈집에 놔둬도 분리불안이 없고, 함부로 벽지를 물어뜯지 않는
반려숲 입양 어때요?
말하자면 숲은 지구상에서 가장 순한 동물,
물 없이도 푸른 호수가 되어주고
3대 지랄견처럼 층간소음 없고, 털이 날리지도 않아요
겨울에는 따끈한 군밤을 물어온다는 소문도 있죠
내가 처음으로 그 아이들을 향해 나무야, 밀키야 불렀을 때, 그것은 반려 견을 부르는 온도였어요 내가 부르자 엽록의 꼬리를 흔들었어요 초록나뭇잎 달린 앞발과 손을 내밀거나, 매미소리 묻은 등으로 내 무릎위에서 길-게 스트레칭을 했어요 어느 날 너무 조용해 내가 또 부르면, 구석에 섰던 콘솔가구 나무들 도토리 몇 알 입에 물고 막 달려와 벌러덩 눕거나 복종의 자세로 납작 엎드렸죠 하얀 이빨도 보였지만 절대 물지 않아요 거실 탁자는 수다쟁이 인걸 그때 알았어요 그 앞에 앉으면 나는 아마존 강 정글에 있어요 왕우렁이 막시무스물장군 피라루쿠 네온테트라 파야라 붉은꼬리메기…… 막, 붕괴된 구름 사이로 폭포수 뛰어내리던 회색빛, 언덕으로 앞발이 미끄러지는 비를 붙잡느라 애먹었다며 탁자가 마구 수다를 떨어요 그땐 알프스 숲에 살았었대요
반려숲 한 마리 분양하세요
쿠어에서 출발해 이탈리아 티라노로 향하는 베르니아 특급, 그 끝없는 평원과
창가에 앉으면 당신 가슴에서 자꾸만 들리게 될, 피톤치드 향의 메아리는 옵션입니다
운 좋은 밤에는 간간히 눈 덮인 땅, 크로커스 꽃이
꿈속까지 따라가 꼬리치며 놀아줄 거예요
당신의 집 나무 탁자는
집안을 쫄랑대며 돌아다닐 것이고,
창가 쪽 오솔길을 특히 좋아할 거예요
* 오 나의 쥬시
김미경
그러니까 그녀는 껌 생산부
포장반은 포도와 장미의 합성어
장밋빛과 장맛비는 너무 다른 신분들
흰 설탕 가루를 묻힌 달빛, 재단해 본 적 있어요?
꽥꽥거리던 기계소리도 포실포실 해져요
우-웩, 현장 말이에요
컨베이어 벨트 위에서, 네모난 소리 네모난 냇물이 되어 끝없이 팔려나가는 그녀, 군가보다 박력 있게 떠내려가는 법을 알죠 눈 한번 감았다 뜨면 하얗게 뛰어다니는 눈송이, 오늘도 복잡한 생각을 규격에 맞춰 자를 시간, 가루를 졸음처럼 눈꺼풀에 묻히고 껌 판을 든 발걸음 여공들의 쓸쓸한 손은 슬픔의 당도가 높아요 자신을 꽃으로 착각해 직사각형 향기를 흘리죠 바퀴달린 밤에 실려 슈퍼마켓으로 나가는 손가락만 한 네모들, 반장이 자꾸만 닫히는 눈꺼풀의 옆구리를 쿡, 찔러요 그녀가 만든 사각은 번쩍 깨어나, 운전하는 고속도로에 저마다 풍선을 달아줘요 눈부신 학력대신 내일을 꺼내 입고 포니테일 흔들며 집으로 가는 여공들
베게의 별명은 쥬시예요
오, 나의 쥬시-
베개가 노랑이면 그 까짓것 어때요
껌종이보다 큰 사각을 끌어 덮고 하얗게 잠을 잘 거예요
한때 그녀도 사각은 오로지 모자로만 정의한 적 있죠 출근을 기계에 찍는 오후 한 시는 그녀가 공장으로 납품될 시간, 청색유니폼을 입은 여공들도 은단, 후라보노, 복숭아, 딸기, 아카시아 같이 저마다 아이디를 목에 걸면 하루가 시작 되죠 구내식당에서도 블루와 화이트는 절대 섞이지 않아요 종합과일맛 풍선껌이 아니거든요
누군가 뱉은 껌이 구두 밑창에 달라붙은 날엔
집으로 가는 길이 참 멀어요
졸린 밤을 갈아탄 나의 아카시아 숲이
친구가 입학한 그 학교 운동장만 해 질 때
그때는 그녀도 네모난 껌판 대신 전공서를 넘길 거래요
*** 심사평 ***
http://www.jndn.com/article.php?aid=1672584906351940153
시적 사유의 깊이와 상상력에 중점 2023 전남매일 신춘문예 시 심사평 강대선 시인 |
***당선소감***
http://www.jndn.com/article.php?aid=1672584921351941153
"성경 말씀이 시와 저를 연결시켜 주었습니다"
전혀 생각 못했던 당선전화를 받고, 하얀 밥물이 끓어 넘치듯 내 속에서 사계절 눈물이 흘러나왔습니다.초년시절과 청년시절, 성인이 되어서까지 평생 시를 동경했지만 통성명도 못한 채 헤어
www.jnd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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