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의 동산/참고서에 있는 시 모음

오래된 가구/ 마경덕

포도나무 가지 2022. 11. 7. 16:54

 

오래된 가구

 

마경덕

 

짧은 다리로 버티고 선 장롱

두 장정(壯丁)의 힘에 밀려

, 간신히 한 발을 떼어놓는다

움푹 패인 발자국 네 개

한 자리를 지켜온 이십 년의 체중이

비닐장판에 찍혀 있다

 

잠시 땀을 식히며 들여다본

허름한 목판(木版)

긁히고 멍든 자국이 드러난다

나무의 속살에 이렇듯 상처가 많았던가

언제부턴가 문짝에 틈 하나를 내주고

서서히 기울고 있었구나

머리맡에 서 있는 네게 기대어

책을 읽고 아이를 낳고 TV를 보며

남편의 늦은 귀가를 기다렸었다

 

열 자나 되는 몸통을 지붕 아래 세우고

방바닥에 뿌리를 내린

묵은 나무 한 그루

어깨를 안아보니

우듬지로 오르는 물소리 들린다

오래된 가구는

아직 숲을 기억하는지

발아래 무성한 그늘을 떨어뜨리고